현재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선교활동은 서구권의 선교사들보다 나머지 세계권의 선교사들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이미 많은 분들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남미, 아프리카, 중국 등 과거에 철저히 창의적 접근지역으로만 여겨졌던 지역들이 이제는 도리어 선교사를 배출하고 있는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과거에 선교활동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어린아이사역, 구호사역, 인도지원사역 등이 비즈니스 활동과 맞물려 그 양상이 점점 변해가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선교의 상황을 서구권의 관점으로만 해석했을 때 생기는 오류는 많을 수 있습니다. 한국선교의 상황은 제3자가 관찰했을 때 보이는 insight이 있겠지만, 사실은 한국사람들 본인이 치열하게 생각하고 분석했을 때 더 잘 아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한국문화에 반영하여서 한국만의 선교학을 발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이와 같이 경제학에서도 사실은 시대가 달라지면서 다른 관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MicroeconomicsMacroeconomics를 배웠던 요소들이 대부분 서구권 관점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한 일례로 Adam Smith[국부론]에서 나온 경제학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훌륭한 혜안을 제공하지만, 17~18세기의 계몽주의에서 그 뿌리가 나왔습니다. 즉 현대적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계몽주의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미국이 그 개인주의의 선봉을 달리고 있으며, 서유럽이 그 궤도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진국들이 개인주의를 따라가지만, 사실은 전체통계를 놓고 보면 개인주의는 일부분입니다. 대부분 나라들은 collectivism (집단주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 일례로 동양과 아프리카, 남미, 동유럽, 그리고 러시아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연구는 저명한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인 길트 홉스테데(Geert Hofstede)의 리포트를 통해 혜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 웹사이트에 가면 그의 리포트를 볼 수 있습니다: http://geert-hofstede.com/south-korea.html

현재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은 서구권의 개인주의에 입각한 경제학입니다. 요즘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인 경제학이 잘못된 것이 많은지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가르치면서 이것이 땅이나 자산 및 금융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간단히 배우는데, 이것이 통하지 않음을 피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석유시장, 주식시장, 주택시장 등은 이미 그 법칙을 위배한지 오래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Adam Smith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비유를 들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손비유가 [국부론]에서 처음 언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가 보이지 않는 손을 제대로 설명한 것은 [국부론]이 아니라 [국부론] 이전에 쓴 [도덕감정론]에서 입니다.

Adam Smith보이지 않는 손비유는 많은 경제입문 교과서가 이야기 하듯이 개인주의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도덕감정론]에서 설명이 잘 되었듯이, “보이지 않는 손공정한 관찰자의 손이라고 설명합니다. , 사람들의 마음에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어서 (마음의 양심과 비슷한것입니다), 타인의 인정을 올바르게 받기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동기가 있어야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부와 영예와 높은 지위를 향한 경주에서 사람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지만, 그가 경쟁자들을 밀어제치거나 넘어뜨린다면 관찰자들의 관용은 끝난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그런데 현재 경제학은 마치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경제학의 전부인 것처럼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돈을 못벌어도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며, “공짜점심은 없다고 선언하지만 이미 세계는 공짜경제에 들어가고 있으며 (온라인 비즈니스), 경제적인 사람을 설명하는데 있어 인간적인 사람을 예를 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 사람을 예로 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결론은, 한국사람이 BAM을 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태클 걸고 넘어져야 합니다. 비즈니스와 경제에 있어 한가지 정답만은 결코 없습니다. 따라서 BAM을 추구하시는 분들의 앞으로 가진 가장 큰 챌린지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사람들이 지성으로 일구어낸 분야를 뛰어넘는가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새로운 분야를 창조해야 하는 필요성이 BAMer에게 있습니다.

한국인 BAMer가 창조해야 하는 분야는, 바로 한국사람인 정체성에서 어떻게 하면 글로벌한 시대에 BAM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영역입니다. 개인주의 문화가 아닌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BAM은 어떤지도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현재 로잔회의에서 이야기 하는 선교적인 관점과 비즈니스 관점은, 지나치게 서구적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