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문장입니다.

진정한 BAM을 하려면 BAM을 포기해야 합니다.

Business As Mission이라는 단어가 총체적 선교이자 교회 뿐만이 아닌 일터와 일상생활에서도 복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면, BAM이라는 단어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BAM이라는 용어와 사역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복음보다 BAM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특히 BAM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하고 잘 모르는 청년이 BAM에 대해서 소식을 들을 때, 이들은 십중팔구 BAM이 또 하나의 어떤 사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지 않으면, 관심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많은 분들이 BAM이라는 용어를 확립하려고 애를 쓰고 계십니다.

어떤 이들은 BAM이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 총체적인 선교를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BAM이 CPM (Church Planting Ministry, 교회를 세우는 사역)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BAM이 CPM이라고 말합니다. 한 쪽에서는, 비즈니스 경험이 없이는 온전한 BAM이 불가능 하다고 이야기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이 경영가에만 국한된 BAM 정의라고 반박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BAM 자체가 Life As Mission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에서 예수님의 복음이 드러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BAM을 추구한다면, BAM을 버릴 준비를 하세요.

BAM이라는 단어 없이 사람들을 격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합니다. BAM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용하는 돈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물음으로써 도전을 줄 수 있습니다. BAM이 또 다른 사역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과 선교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도전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어느 순간 BAM이라는 단어가 제 또래의 청년들에게 수 많은 오해와 선입견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아예 제가 사용하는 용어와 생각에 BAM이라는 단어를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BAM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동일하게 도전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BAM이라는 용어는 정의를 확립해 나가는 신학자들에게 그 역할을 믿고 맡깁시다.

우리는 BAMer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자 자매입니다. 자신과 어느 특정인을 BAMer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편협하게 분류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BAM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울타리를 스스로 치는 셈입니다. 따라서 BAMer라는 용어도 버릴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BAM이라는 용어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동시에 깨달은 BAM의 가치를 온전히 끌어안고 갈 자신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