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장애인이든, 선천적 장애인이든, 그들도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인을 돕는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그런 시각은 대부분 잘못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친구로서 돕는 것이 아닌, 일방적으로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가 무의식적으로 형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닙니다.

장애인은 돕는 대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사람들일 뿐입니다.

마치 우리가 다른 형제 자매들을 돕는 대상이 아닌, 협력하고 도와주는 친구로 바라보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장애인들 중에서도 능력이 뛰어나서 리더로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장애를 극복하면서, 어려움을 통해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지를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기뻐해줄 일입니다.

그러나 리더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입니다.

만약 리더 본인이 장애인이라면, 허세 (혹은 허영심)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며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세는 그룹에게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허세란, 자신의 참된 가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하는 현상입니다. (허영심을 가진 직원을 다루는 법 참고)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어 메커니즘을 구축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을 보호하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이런 보호막 때문에 허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허세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리더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않은 주제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애인들 중에 자신의 장애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리더가 있다면,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리더는 그룹 전체에게 어느 정도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진 리더일수록 일터에서 직원들과 동료에게 부지런히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협력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는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만큼 리더라는 자리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입니다.

 

저는 누군가와 일을 할 때 제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습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저에 대한 기대치를 처음부터 낮추거나, 일을 할 때 어느정도의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셈입니다. 대화할 때 몇 단어를 못알아 들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스카이프와 같은 화상채팅을 할 때도 잘 못알아 들을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저는 화상채팅에서 나오는 대화의 절반 조차도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화상채팅 이후에 만약 미팅에 대한 회의록(minutes)이 나온다면 그것을 꼭 읽어봅니다. 사실 스카이프와 같은 화상채팅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종류의 미팅 자체를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면, 양해를 구하고 주변에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협력적인 사람들로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난독증을 극복하기 참고)

사람은 누구나 허세가 어느정도 있습니다. 이 허세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건강한 회사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장애인도 예외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