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As Mission을 추구하면서, 많이 빠지는 교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BAM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BAM은 복음적인 삶을 살기 위해 돕는 도구일 뿐입니다. 아직 BAM이라는 컨셉이 통일화된 개념으로 자리잡지 않아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다른 관점에서 해석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복음)을 중점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와 다른 성도들을 인정해야 진짜 BAM이다

진정한 BAM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정을 하는 BAM을 추구합니다.

Business As Mission은 교회가 잘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해야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Business As Mission은 악한 세상에서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예전부터 이미 악했습니다.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마치 대부분의 성도들이 악한 세상에 휩쓸린 것처럼 여긴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런 시각은 오히려 자신을 영적인 권위자로 내세우는 갑이 되게 만드는 위험한 시각입니다.

진정한 BAM은 복음을 어떻게 하면 종교적인 생활이 아닌, 삶 속에서도 치열하게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BAM을 하면서 지역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숨겨진 교만입니다. 자신이 신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리더들과 목사들이 복음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해서 복음적이지 않다는 것은 또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노방전도에 대한 과한 열정으로 주변 기독교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역자 분이 계십니다. 이 사역자 분이 100% 복음적이지 않다고 비판을 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판단은 예수님만이 하실 입니다.

우리의 적군은 성도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군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 사탄과 악한 영입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사랑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군은 누굴까요?

바로 복음에 목숨을 거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제자화와 복음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입니다.

이들의 전도 방식이 다르거나 과격하다고 해서, 그들을 배척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소중한 아군입니다.

효율(efficiency)을 생각하지 맙시다. 이렇게 복음화해야 한다- 라는 이상과 효율, 그것은 엘리트주의의 산물입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며 매우 편협합니다.

따라서 지역교회에서 복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성도들과 사역자분들을 바라본다면, 아무리 그들이 크고 작은 잡음을 일으킨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소중한 아군인 것입니다. 하나의 큰 잘못으로 전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BAM, 복음화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BAM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세상인을 배려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에 집중한 이후에 나타날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의를 전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삶 속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초자연적인 현상 외에는 저절로 드러나지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의무가 성도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행위 자체는 매우 부자연스러우며, 침노하는 형태를 띕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하나,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18)

또한 예수님께서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20) 그 말씀은 제자화를 하는 삶을 살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 중에서 “삶 속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BAM의 개념에 치우친 나머지, 복음화를 하지 않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는 실로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공교육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크게 영향을 받은 세대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다른이에게 강요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대이며, 또한 그것이 실례(offence)라고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사탄은 바로 이 부분을 노리고 있습니다. 결국, 복음 전하는 일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의 청년은 점점 제자화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크게 느낀다면, 그 사랑을 다른 이에게 나누고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꺼려하는 청년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방법을 소개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개인적으로만 예수님의 은혜를 믿고 사는 힘 없는 성도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은혜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라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들을 전부 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중요한 것이 자신의 시야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와 중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BAM을 추구한다면, 복음이 중심이 되도록 하십시오.

복음이 중심이 되면, 다른 이론은 따라 올 것입니다.

복음을 아는 것에 평생 목숨을 걸고,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 길은 좁고 외로운 길입니다.

매일을 예수님으로 채우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루분의 만나를 감사하게 여기며, 그 사랑(복음)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의 이야기

어느 순간부터 제자화를 하는 삶이 아닌, 여러 이론과 좋은 BAM 사례들로 만족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던 저에게는, 이런 깨달음이 정말 소중했습니다. 첫 번째로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저의 머리로만 생각했던 삶을 회개했습니다. BAM 사례를 아는 것과, 제가 그 길을 직접 살아가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이 아닌,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의외로 제가 너무 투박하고 거칠어서 잘 안맞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너무 과격한 방법으로 전도를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복음과 선교를 진지하게 여기지만 성경적으로 맞지 않게 돈을 사용한다든지 등- 보기 싫은 모습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소중한 아군이었습니다.

깨닫고 나니 지역교회가 매우 소중해졌습니다. 형제자매로 생각하는 스펙트럼(범위) 자체가 넓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BAMer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큰 비밀들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신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친구로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돕는 helper 역할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도들을 비판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이야기 해주되, 그들을 100% 인정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보다 더 진한 성령의 물로 이루어진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BAM을 추구하면서 복음화의 중요성을 놓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