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지, 돈 자체는 악하지 않다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몇 년동안 이 주제를 놓고 고민을 했습니다.

한 번은 돈 자체가 악의 뿌리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부자라는 증거를 찾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다소 황당한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막대한 부를 허락하셨습니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랄 왕인 아비멜렉에게 죽임을 당할까 무서워서 자신의 아내가 누이라는 거짓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즉, 아브라함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로 아브라함을 그 상황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책망하시기보다, 넉넉한 은혜로 아비멜렉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해명까지 해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그 상황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아비멜렉이 가진 재물(양, 소, 노예, 은 1000개)과 좋은 땅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잘못 판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를 허락하시는구나! 역시 부는 악하지 않아! 돈은 악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것 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저는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이 부자이며, 하나님께서 부를 허락하시는 것이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셉도 부자였고, 야곱도 부가 많았고, 노아도 부가 없었으면 방주를 짓지 못했을 것이며, 신약에도 예수님의 무덤을 마련한 아리마대 요셉도 부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가 되는 것이 악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으며, 부(wealth)라는 것 자체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부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 할까?

그렇게 부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몇 개의 구절들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악하지 않다고 믿었던 것이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반론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단 첫째로,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바울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만큼 돈을 사랑함이 온 악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돈이 좋지 않음을 시사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애써 무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죄성 때문에 돈을 사랑하게 되는 나약한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이 나약한 육체는 천국에 가서 새몸을 입으면서 비로소 벗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저는 “돈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라고 제 자신을 맹신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하고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돈의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에 경고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돈은 절대로 선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돈 자체가 일만 악의 뿌리는 아닐지라도, 일만 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시험당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태복음 6:13)

저는 언제든지라도 돈을 사랑함에 빠질 수 있는 죄인입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몇 년동안 저는 제 자신을 너무 맹신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냉큼 회개했습니다.

 

둘째로,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 부를 모으는 것이 선하다고 여겼던 저를 책망했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5)

돈이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이것은 말 그대로 가진 것을 만족하면서 살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유에 대해서도 성령님께서는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십니다. 돈이 있는 바를 만족해 하고 살아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고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잘 와닿지 않으면 우리 한번 영어로 읽어볼까요?

Keep your lives free from the love of money and be content with what you have, because God has said, “Never will I leave you; never will I forsake you.” (Hebrews 13:5)

여기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Be content with what you have, because God has said, “Never will I leave you; never will I forsake you.” 네가 가진 것에 만족해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다.”

보통 성경에서 두 번 강조하는 것은 절대적인 약속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보증을 서주셨습니다! “돈을 있는 그대로 만족하면서 살아라! 내가 너를 먹여살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책임진다!”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은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돈을 모으지 말아라. 부는 내가 허락하니, 너는 돈을 모으지 말아라. 있는 그대로 감사하면서 살아라. 부를 모으려고 애쓰지 말아라. 부가 목적이 되면 절대로 안된다.”

따라서 부를 모으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선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BAM을 추구하려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부를 모으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에서 재물에 대한 경고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묻습니다. 이 청년은 “선함”에 기준을 맞추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복음 10:17)

예수님은 청년의 의도를 바로 간파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선함”에 대한 기준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청년의 선함 기준이 틀렸으므로) 선하다는 정의를 정정해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0:18-1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정정해주십니다. 그리고, 율법을 열거하십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선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12)

그런데 청년이 율법에 대해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마가복음 10:20)

청년은 이 모든 율법을 지켰다고 자랑합니다. 실로 대단한 청년입니다. 그 많은 율법을 지키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율법지킴은 마음도 함께 가야 100%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중에서 아무도 율법을 100%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 10절에서 율법을 다 지켜도 하나만 어기면 다 어기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해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는 죄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저주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이 대단한 청년을 보고 사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기 때문이고, 바리새인도 아닌 청년이 노력한다는 것은 좋은 의도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을 사랑하셔서, 구원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이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가복음 10:21)

사랑스러운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던 예수님은, 엄청난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를 제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청년이 물어본 질문에 대한 정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단, 제자로 들어오기 전에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자청년은 재물이 많아서 이 말씀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고 떠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재물을 선택한 것입니다. 영생보다 재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신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셨을까요? 결국 청년은 율법을 다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 동기가 자신을 위한 율법지킴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자기 몸과 같이 열렬히 사랑한다면 재물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물이 그의 지혜를 가리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청년에 대한 사례를 들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마가복음 10:23)

저는 이 말씀을 두고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재물이 있는 자”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재물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 정말 믿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BAM을 추구하는 자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사람 중에서 부자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명한 낙타와 바늘귀에 대한 비유를 하십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가복음 10:24-25)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보다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단언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부에 대한 태도를 말씀하십니다. 부에 대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돈을 신뢰하게 됩니다. 따라서 부를 많이 가진 자는 영생보다 돈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부자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그만큼 더 큰 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여태까지 부에 대해서 성경이 다양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요약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 그 말은, 일만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수단이 돈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돈은 중립적이지 않다! 시험은 피해야 하는 것이 지혜다!
  • 자신이 돈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다.
  • 크리스쳔이라면 부를 모으는데 목적을 두지 않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만족하면서 살 때, 공급해주시겠다고 두 번이나 강조해서 보증을 서주셨다!
  •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재물보다 예수님을 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부자는 돈을 맹신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구원을 받으려면 훨씬 큰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BAM 기업의 목적

우리는 부에 대한 여러 모습을 위에 살펴보았습니다. 이 관점을 가지고 BAM 기업에 대해서 한번 논의해봅시다.

먼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려고 합니다.

BAM 기업은 누구를 위한 기업입니까?

총체적 선교를 하는 비즈니스는 누구를 위해서 합니까?

이 질문에 잘 대답해야 합니다. 좀 어렵다면, 다른 말로 한번 질문을 수정해봅시다.

BAM 기업은 크리스챤을 위한 기업입니까? 아니면 불신자를 위한 기업입니까?

 

저는 몇 년동안 크리스챤 기업과 BAM 기업의 차이에 대해서 구분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만약 BAM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운동이라면, BAM 기업은 일반적인 크리스챤 기업과 궤를 달리 할 것입니다.

크리스챤을 먹여 살리는 것(즉, 돕는 것)이 BAM 기업의 목적일까요? “많은” 크리스챤과 함께 하는 것이 BAM 기업일까요?

저는 BAM이 선교를 포함한다고 보기 때문에, BAM 기업의 목적은 불신자를 위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겠습니다.

얼핏보면 Business For Mission 같지만,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총체적 선교로 복음을 선포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총체적 선교로 복음을 선포하려면, BAM 기업은 회사내에 크리스챤 수가 적어야 합니다.

크리스챤 기업과 BAM 기업의 차이는 구성원 비율에도 있다!

 

위의 그림은 예시로 든 것입니다. 크리스챤 기업은 말 그대로 크리스챤이 회사내에 수가 많습니다. 이 환경은 크리스챤의 이상(ideology)을 구축하기에 참 좋은 환경입니다. 많은 크리스챤이 모여서 기독교적 문화를 쉽게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BAM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BAM 기업은 처음 시작은 무조건 크리스챤이 적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우선적이기 때문입니다. BAM 기업은 기독교인을 돕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총체적 선교를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 총체적 선교의 대상은 바로 세상인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비밀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BAM 기업의 비밀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재물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명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 청지기가 소유를 허비한다는 소식이 주인에게 들렸습니다. 따라서 청지기는 주인에게 불려갔고, 주인은 책망하면서 청지기직을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일자리 잃어서 앞으로 먹고 살 방법이 별로 없음을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꾀를 냅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호의(favour)를 베풉니다!

기름 100병을 빚진 자에게는 50병만 갚으라고 은혜를 베풉니다. (알기 쉽게 단위를 현대적으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밀을 100자루 빚진 자에게는 80자루만 갚으라고 호의를 베풉니다. 왜 그랬을까요? 청지기는 적어도 인맥이나 만들고 일자리를 잃자! 라고 마음을 먹은 셈입니다. 호의를 베풀면 일자리를 잃어도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푼만큼 그에게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행동한 것입니다.

이제 주인이 청지기에게 화를 낼 것 같습니다. 주인의 물건을 빌려준 것을 100%로 갚게 하지 않고 더 적게 돌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 그런데 주인은 도리어 청지기를 칭찬합니다. “너 참 지혜있게 했구나! 잘했어!”

… 저는 이 내용을 보고 다소 황당했습니다. 결론이 왜 이런 식으로 날까? 하고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논리에 맞지 않는 결론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를 하려면, 문맥(context)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은 다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신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청지기는 재물을 특별히 맡기신 우리 성도를 말합니다. (누가복음 12:42)

주인인 하나님은, 청지기직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아무나 청지기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에게 청지기 역할을 준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2장 41절에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하고 질문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누가복음 12:42-44

즉, 청지기는 은혜로 맡겨진 직분인 것입니다. 책임있는 자리입니다. 주인인 하나님께서 모든 소유를 청지기에게 맡깁니다.

다시 누가복음 16장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과 청지기가 특별히 소유를 맡기신 책임을 진 성도라고 보고 해석을 하면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성도에게 청지기직을 주었습니다. 마땅히 청지기도 은혜로 사람을 돌보아야 마땅합니다. 청지기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였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보고 도리어 기뻐합니다.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푼 것 같이, 너도 은혜로 베푸는구나! 참 잘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서 비유를 설명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누가복음 16:9

이 말씀에 BAM 기업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재물은 불의합니다. KJV에서는 불의한 재물을 mammon of unrighteousness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은 불의하다는 것을요! 돈은 선하지 않습니다. 돈은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돈은 불의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공생애 기간 동안 돈으로 기적을 베풀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세상인”을 말합니다. 믿는자가 아닌, 비신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사귀는 방법에는 재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셋째,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재물을 사용했을 때, 영원한 처소로 그 사람들이 우리를 영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재물을 사용하는 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재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넷째, 없어질 때에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남김없이 재물을 전부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쓰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희생하듯이, 소멸해야 합니다.

 

이 4가지 깨달음은 BAM 기업에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회사는 비신자를 위한 회사여야 합니다.

왜냐구요? 회사는 이윤을 내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그 이윤 중에 많은 돈이 직원 월급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용으로도 들어갑니다. 즉, 회사구성원을 위해 쓰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비즈니스는 돈을 창출하고 돈을 쓰기 때문에, 이 과정이 성경적이려면 돈을 쓰는 곳도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돈을 쓰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잘 확인해야 합니다!

직원에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면, 성경적인 소비는 비신자에게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BAM 기업은 처음에 크리스챤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신자로 가득 채움이 옳습니다!

 

왜 크리스챤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이미 크리스챤에게는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얻을 능력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8:18)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먼저 다 공급해주신다고 보장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22-32)

BAM 기업을 세우려는 사람은, 형제 자매들이 어떻게 먹고 살까 고민해주지 맙시다. 그것은 믿음으로 내어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을 알아서 먹여 살리실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도움을 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목적은 비신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 그것이 BAM 기업의 비밀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복음”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의 결론을 맺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6:13

우리는 재물을 섬기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청지기로 맡긴 것도 은혜라면, 주인의 은혜를 바라며 끝까지 은혜로 섬기도록 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