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터 즐겨부르던 찬송가가 있다. <예수 사랑하심은>이라는 찬송가다. 그런데 이 곡은 아주 슬픈 내용에서 나온 찬송가다.

미국 뉴욕주의 롱아일랜드에 살았던 Anna Warner와 Susan Warner 두 자매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었다. 하지만 둘은 글 쓰는 능력이 뛰어났고, 생계유지를 위해 청소년 시절부터 일찍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작품으로 발표된 The Wide Wide World (1850)가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먹고 살 길이 열리게 되었고, 이후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사실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가 내용은 두 자매가 함께 쓴 소설 Say and Seal (말과 표적, 1860)에 나오는 시다. Say and Seal 소설의 주인공 주일학교 교사 존 린덴과 그의 약혼자 페이스 데릭은 죽어가는 어린 소년 조니 팩스를 방문한다.

어린 조니는 린덴 선생님에게 간신히 “노래를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린덴은 숨쉬기조차 힘들어가며 죽어가는 조니를 끌어 안으며 노래를 부른다.

Jesus loves me! This I know,
For the Bible tells me so;
Little ones to Him belong,
They are weak but He is strong.

이 노래를 들은 조니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나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얼마 안 되어 평안히 죽는다.

배경이나 문맥(context)이란 참으로 중요하다. 원래는 죽어가는 아이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겨주며 불러주는 그런 위대한 찬송시였던 것이다.

나중에 Say and Seal 소설을 읽은 William Bradbury는 이 부분을 읽고 너무 감동받아 어린아이를 위한 찬송가로 편곡한다. 그리고 오늘날 내가 아끼는 찬송가가 되었다.

지금도 이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다양한 선교지의 어린이들이 떠오른다. 단기선교는 원주민 선교든, 해외 선교든 어린이 사역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예전에는 선교지에 갔다오면 pray for ____ 이런 식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pray for ___ (~을 위해 기도)를 하지 않는다.

pray for… 이라는 뉘앙스는 내 자신과 선교지를 무의식적으로 구분짓는 말이다.
나는 여기 도시에 있고, 선교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광기> 저자 닉 립켄 박사는 선교지의 핍박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지 그는 지적한다. 상황이 되면 기도하고, 안되면 말고, 이 태도로 가기 쉽다는 것이다.
립켄 박사는 pray “with” the missionaries! 선교사들과 함께 기도하라! 라고 외친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가?
핍박받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핍박에 참여하고 있는가?

Let us pray with the persecuted.
Let us pray with the children in the mission field.

다시금 이것을 새기면서 이를 악문다.
안식에 머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선진국에서 누리고 있는 평안함이 초현실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도 그 고난과 핍박에 참여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든지 복음을 위한 고난과 핍박을 경험하면서도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사도들이 모두 그런 본을 보이셨다.

참고: <은혜와 감동이 있는 숨겨진 찬송이야기>, 김남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