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서른 넘어가는 순간 조바심이 생긴다. (40, 50세도 마찬가지)

두자리 수가 바뀌니 달라보인다. 나는 너무 늦은건가?

절대 그렇지 않다. 기독교인에게는 “절대 늦음”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명수의 유명한 어록.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해당 안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비로소 활동한 인물들, 그리고 허송세월(?)을 한 듯한 인물들을 소개해본다. 100살에 아들을 가진 아브라함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니까, 좀 덜 유명한 사람들 위주로 소개해보겠다 ^^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모세 다음의 리더였다. 그는 유명한 일화인 가나안 정탐 이야기에서 하나님에게 믿음을 인정받아 20살을 넘은 사람 중에서 갈렙과 더불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허용되었다. 그런데 그는 언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까?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이 지난 뒤에 사망하자마자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이때 그의 나이는 93세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터넷의 한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여호수아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정탐꾼으로 선발됨:
BC 1445년 (출애굽 2년)
여호수아 55세

지도자로 부름 받음:
BC 1407년 (출애굽 40년)
여호수아 93세

생애를 마침:
BC 1390년
여호수아 110세 (여호수아 24:29에 기록)

출처: http://www.abrahampark.com/kor/edu_data/4570

 

그렇다면 그가 가나안 땅을 정탐했을 때는 55세, 그리고 광야에서 모세와 함께 떠돌기를 40년 다 채우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셈이 된다. 사실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인내의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허락받았는데, 광야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이게 웬 말인가! 그것도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이었다. 강산이 몇 번이고 변한 기간을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보냈다.

따라서 낙심하지 말자. 올바른 믿음으로 55세에 고백을 했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40년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오직 주님이 허락하셔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다. 여호수아의 때는 영원한 중보자인 예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의 온 선지자와 예언자가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을 믿고 있는 은혜로운 위치에 있다. 따라서 늦었다고 더더욱 생각하지 말자.

 

갈렙

갈렙 역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 역시 여호수아와 함께 광야를 모세와 함께 떠돌다가 모세가 사망하고 나서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초심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믿음으로 크게 선포한 인물이었다!

그가 어떤 믿음을 선포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여호수아 14:10-13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땅을 어떻게 분배할지 의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갈렙이 말한다.

“내 나이 85세요! 나는 지금도 팔팔하오! 헤브론 산지가 점령하기 어려운 땅이라고 들었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갈렙은 실제로 그 어렵다는 헤브론을 점령하여 그의 기업을 취했다. 정말 대단하다!

나이 85세에 정정한 갈렙을 떠올려보자. 아무리 이때 평균 수명이 120세라고 했더라도, 85세면 그래도 나이가 꽤 많은 편이다. 따라서 30살 이상 되었다고 낙심하지 말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외치자!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지금도 손꼽히는 인물이다. (문명 게임에서도 그는 항상 등장한다)

우리는 모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는 충동적인 사람이었고, 겁쟁이였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떨기나무 앞에서 부르실 때도 그는 하나님을 목전에 바로 앞에 두고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호기(?)를 부린다. 그 정도로 그는 겁쟁이였다.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인물이었다. 파라오의 칼부림으로부터 보호하셨고, 심지어 파라오의 궁정에서 어머님과 누이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컸을 정도로 주님의 은혜가 매우 컸다. 이집트 파라오의 궁중 예법을 배우면서 큰 그는, 한 이집트인이 동포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살인을 하고 만다! 그런데 다음 날에 그가 이집트인을 살인한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지냈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아들 이름을 부정적인 이름으로 짓는데, 아들 이름의 뜻은 “나그네가 됨”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미디안 땅에서 아들 둘을 낳으면서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무려 40년이었다!

스데반의 설교를 한 번 살펴보자.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사도행전 7:29-30

 

40년을 타지에서 보낸 뒤에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다. 그리고 그는 형 아론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꺼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40년을 또 광야에서 보내고 죽다니, 불쌍하다)

따라서 30살 넘었는데 내가 뭘 하지도 못했다- 하고 낙심을 절대로 하지 말자! 이미 당신은 회심하였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구주로 고백하면서 살고 있다. 40년 동안 미디안 땅에서 시간을 보낸 모세는 당시 성령님과 동행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는 살인자였다) 우리는 성령님과 이미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깨닫고 자각하자! 우리가 더 대단한 위치에 있다!

 

요셉

우리는 요셉을 떠올릴 때 그가 지혜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 그는 삐뚤어진 야곱에게 자란 영향으로 정말 우매한 자였다. 그가 어떻게 교만하게 형들을 대했는지 생각해보라. 정말 멍청한 짓을 어릴 때 많이 했다. 그가 지혜로워진 것은 이집트에 팔리고 난 다음이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 멍청한 짓을 했을 때는 그의 나이 17세였다. (창세기 37:2) 그는 17세 때 형들의 잘못을 자기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르는 치사한 놈이었다! 그리고 그는 형들의 분노를 계속 사서 결국 팔리고 만다. (잔인하긴 하지만, 자업자득 아닌가?)

그런데 요셉이 파라오에게 꿈을 해석하고 인정을 받아 이집트의 총리가 된 때는 30살이었다. (창세기 41:46)

따라서 이집트에서 종노릇하고, 감옥에 갇히고 이 고생의 시간은 무려 13년이었다. (30 빼기 17은 13) 13년의 인내의 기간이 필요했다. 아이폰이 출시되고 아이폰 8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서 스마트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도 남는 그 긴 기간을 요셉은 우울한 현실 속에서 살았던 셈이다.

기억하자. 우리 인생에서 고난이 오고 역경이 와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시다. 13년을 인내하고 버틴 요셉도 있다. 예수님 안에 거한 당신도 할 수 있다!

 

사도 바울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절반 이상이나 기록한 사도 바울은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그는 스데반의 순교 자리에도 있었던 인물이다. 기독교를 박해하고 기독교인을 죽이는 데 앞장 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 회심했을까?

코람데오닷컴이 정리한 연도표에 의하면 AD 33년에 회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AD 65년에 순교했다. 32년을 불처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셈이다. 그는 현재 터키의 다소(Tarsus)에서 태어났다고 사도행전 22:3에서 기록하며, 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BC 4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브리태니카 백과사전)

그렇다면 그가 회심한 AD 33년에 그의 나이는 적어도 30살은 넘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되며, 약 34세의 나이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는 30살이 넘어 예수님을 알았다! 반면에 당신은 예수님을 안 지 꽤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청년이라면 30살 전에는 회심했을 것 아닌가? (심지어 30살 넘게 예수님을 영접한 아저씨여도 상관없다, 기억하자)

사도 바울도 늦게 예수님을 알아 회심하였어도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썼는데,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없다. 사도행전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은 늦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타이밍을 보자

성경의 다섯 인물을 여태까지 살펴보았다. 사실 이외에도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30살 이후에 역사의 무대로 들어온 사람은 정말 많다. 허송세월을 오랜 시간 보낸 것 같은 대표적인 인물 5명을 예를 든 것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당시 구약에는 평균 수명대가 120살이었다. 노아의 방주 이후 수명이 확 줄어들었는데, 당시 사람은 120살까지 살았었다.

현대는 어떠한가?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평균 100세 이상의 시대에 다시 진입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주님이 오시기 전에 모든 것이 하나둘씩 회복되고 있다!

영어로 100세 이상의 노인을 Centenarian이라고 부른다. 캐나다 통계청에 의하면, 최근 2016년의 인구통계에서 100세 이상 노인의 증가율은 가장 가파르게 성장률을 보인 그룹이었다! 무려 41.3%나 증가했다고 통계청은 보고하였다. 그리고 2016년에 캐나다 내에서 100세 이상의 노인은 총 8230명이었다. 약 35년 뒤면 100세 노인 수는 5배 더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캐나다 통계청)

전 세계적으로 100세 이상 노인 증가수는 급증하는 추세다. 불과 100년전만 하더라도 50세 이하가 평균수명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출처=Our World in Data)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우리에게는 예전보다 노년에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의학적인 도움도 열려있는 그런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30살 이상 넘었는데 어떤 성취를 이루지 못해도 조바심을 가지지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취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예수님을 좇아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함을.

 

30살 넘었다고? 이제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