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말했었다. 15살부터 학문에 전념하면 30세가 되어 전문되어 확립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보면 30대에 전문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불안해 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불안함과 매일 싸운다.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 아직도 불안해 하는 것은 어떻게 조언을 해줘야 할까?

20대에는 대부분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눈앞에 있는 과제와 시험을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대학 졸업하면 직장 잡느라고 정신 없었다. 혹은 연애해서 결혼생활 꾸리느라고 정신없거나.

그런데 직장도 잡고 약간은 진부한 일상생활에 들어가면서, 걱정거리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바쁘게 움직이면서 생활하다가,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조금은 생기면서 드디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젊었을 때 자기자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언제고 그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만약 일하느라, 가정 꾸리느라 바쁘면 그 시기가 40대를 넘어서 찾아올 것이다.

꼴도 보기 싫은 내 자신을 거울로 마주하듯이 투명하게 쳐다보는 그 시기가.
용기가 없다면, 자기합리화로 내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회피할 것이다. 혹은 다른 바쁜 일로 덮으려고 할 것이다.

많은 재능있는 청년들이 불안함 때문에 꽃을 못 피우는 것을 본다. 이 불안함을 빨리 해결할수록 인생은 수월해진다. 그 해법은 단 하나 뿐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연습이다.

세상은 이 불안함에 대해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비교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느 누구는 장애인인데 역경을 이겨냈다, 어느 나라는 가난하게 사는데 넌 행복한거다 등등. 미안하지만 비교방법은 해법이 아니다. 마음속에 깊이 감동을 주면 뭐하는가?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세상은 자기최면을 강추한다. 해결의 근본인 예수님이 쏙 빠진 방법이다. 자기계발서를 살펴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심리학적인 요인을 설명하고, 자기 자신을 더 인지하라고 조언한다. 또 행동에 옮기라고 촉구한다. 그런데 이것도 미안하지만 해법이 아니다. 언제고 막다른 골목길에 마주할 것이다.

페이스북에 보면 자기자신을 채찍질 하는 으쌰으쌰 격려하는 페이지와 좋은 자기계발을 촉구하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자신에게 의지하는 행동이다. 언젠가는 지칠 것이다. 만약 의심이 가면, 전도서를 읽어보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해법이 아니다.

크리스챤은 이미 해답이 주어졌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님이다.

문제를 보지 말고, 예수님을 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