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hen Berrien Stanton은 19세기 말에 미국 디트로이트에 살았던 크리스챤 변호사이자 작가였다. 그는 하바드 대학에서 문과를 졸업한 후, 법대로 바로 들어가서 졸업, 그리고 더 공부하여 콜롬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따낸 엘리트 중에 엘리트다.

그가 쓴 책 <The hidden happiness>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말이 있다:

It is foolish to part company with the world over trifles and so lose its companionship in large affairs.

[의역]
세상과의 분쟁 때문에 그들과 친구가 될 기회를 놓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며 큰 일에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율법적인 태도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기독교인이 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세상을 떠날 수 없다. 세상과 구분되어진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나,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이미 역사적으로 수도회나 절, 속세를 떠나 산속 깊이 들어가는 것 등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Stephen Stanton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Concede others the manner, and they concede you the substance; by adopting the littleness of their language we enlist their ear to the greatness of our cause.

[의역]
다른 사람의 방식을 인정하면, 그들이 당신의 핵심을 인정할 것이다; 세상의 하찮은 언어를 취하면 그들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위대한 목적에 듣도록 유도하는 행동이다.

나는 한 때 교회의 언어에만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특수분야의 용어(jargon)가 되고 말았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잊어먹었다.

그래서 다시 소통하기 위해 연습을 했다. 욕도 스스로 해보고(물론 평소에 욕하지는 않는다), 거룩한(?) 단어를 쓰지 않고 내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연습했다. 그리고 내가 의사소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언어에 의연해지는 법도 연습했다. 욕이나 유행어 등을 들어도 평상심을 잃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할 정도로, 나는 심각하게 “교회 바보”였다.

우리는 세상인의 방식을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의 하찮은 언어에도 초연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면, 세상은 알아본다. 마치 가난한 사람에게 담배와 술이 친구이듯이, 그 행동을 율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가난한 사람과 친구가 되기 쉽듯이 말이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낮아질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별된 자로서 세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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