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iosyncrasy.
최근 들어서 몇 달간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 단어다.
“별난 성격”이라고 영한사전에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은 “특이한 구석”이라고 해야 맞다. 혹은 “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이한 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얼간이 idiot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라틴어 idio에서 파생된 단어다. 라틴어로 idio는 “자기 자신의”라는 뜻이다. (그렇다, 얼간이는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

모든 사람은 idiosyncrasy를 가지고 있다. 특정한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uniqueness(독특함)가 있다.

그런데 모든 idiosyncrasy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힘들었다. 현실을 마주하는 두려움을 뛰어넘느라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개성이 아닌, 어떤 idiosyncrasy는 본인의 나쁜 버릇일 수도 있다. 또한 어떤 것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idiosyncrasy를 어느정도(항상이 아니라 어느정도!) 표출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가정교육의 부재, 허영심, 욕망 등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한다는 사실이다. 율법적인 자세로 항상 자신을 억누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셈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특이한 구석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걸림돌로 여겨진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특이한 점을 억누르도록 공동체 생활의 표준화를 정한다. 그러나 이는 각 사람의 독특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 표출하도록 장려받는 공동체는 가식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독특함도 인정해주자. 그 독특함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독특함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구석이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특이한 점도 예수님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는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우리의 힘으로 긍정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진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상도 긍정의 삶을 외친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마음을 다스림과 명상에는 예수님이 빠져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날마다 상기시킬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얻을 수가 있다. 예수님은 믿음을 완성시키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