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대해서 한 때 오해를 많이 했었다.

일단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시작해야겠다. 이 부분만 하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까.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내면의 목소리를 말한다. 외부적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상당히 드물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외부적으로 들리는 음성을 쫓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보편적인 기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마음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 양심의 찔림, 특정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내면의 소리, 죄를 짓지 말라는 책망 등.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내 생각이고 어떤 것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각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토픽은 교회에서는 특별강의를 들어야지만 더 깊게 배우거나 보통 그런다. 이 글은 내가 시행착오를 굉장히 많이 겪으면서 푸는 썰로, 참고용으로만 하면 좋겠다.

 

하나님의 음성듣기에 대한 오해

1. 특별한 사람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 논리를 믿는 사람이 참 많다. 마치 성도인 우리가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해야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처럼 잘못 믿는 것처럼 말이다. 히브리서 10장 10절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번제처럼 희생하신 덕분에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우리 스스로가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은 구원과 함께 우리가 이미 거룩함을 얻었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도 믿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신앙생활이 나갈 수 밖에 없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거룩하고, 하루 동안 생활하면서 죄를 지으며, 저녁이 되면 회개를 해야 내가 다시 거룩해진다고 착각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온 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13:10)

 

우리가 깨끗하다는 것은 이미 구별된 자로서 거룩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는 해야 한다. 많이 걷고 다니면 발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당연히 발을 씻어야 한다. 우리의 온 몸은 이미 깨끗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고 나서 깨달음(자각)이 온다면 회개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마치 발을 씻는 것이 이미 온 몸이 깨끗한 우리에게 유익한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가? 회개마저도 우리 힘으로 억지로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주셨다.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세족식(feet washing)도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셨다. 이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섬기는 리더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결국 회개의 과정도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가 있다. 자격은 우리에게 없고, 예수님의 모든 자격으로 우리는 살아감을 다시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

이야기가 길었는데, 거룩함과 마찬가지로 어느 특정한 성도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모든 성도가 들을 수가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추다. 여기서 틀어지면,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삽질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은 의심에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는 인생이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격과 희생으로 가능했다. 이 값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너무나 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비싼 값을 치루어 우리를 구원해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겸손의 표시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에이, 나같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이것은 비싼 값을 치루고 내준 하나님의 사랑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 그 말은, 음성을 듣는데 있어 어느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들리는 것이다!

양에게 언제 목자가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양도 그냥 듣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특별한 사람만,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오해하는가?

구원을 받은 성도 모두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나에게 증거를 내밀어 보라고 한다면, 다음 구절을 말하겠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8)

문맥상 예수님의 양은 영생을 얻고, 예수님으로부터 빼앗길 수 없다는 말이다. 목자가 어떻게 양을 취하는지 보았는가? 목자가 양을 선택한다. 양이 목자를 선택해서 걸어간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양은 정말 바보같은(?) 동물이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취하셨다! 그의 값을 치루시고 예수님의 양을 사셨다! 더 이상 사탄이 예수님의 양에게 값을 치루었냐고 따지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명백히 예수님의 양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당연히 들을 수 있다. 특별한 사람만 듣는 것이 아니다.

 

2.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음성을 못 듣는다

내가 한 때 크게 오해했던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죄를 회개하려고 애를 썼다.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성령충만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죄를 짓는 순간 마치 성령 게이지(gauge)가 쑥 빠져나간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이미 이야기를 했지만, 히브리서 10:10에 의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이미 거룩한 몸이다. 거룩한 몸에 죄를 지었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정말 믿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존재임을.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아침에는 제일 거룩하고 저녁이 되면 죄를 회개해야지만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신앙생활은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는 그렇게 얄팍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믿음은 예수님의 성취를 욕되게 한다. 이미 값을 주고 치룬 것을, 다시 나의 자격으로 치루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믿음이다.

죄를 짓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성경에도 있다. 한 번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신다. 그리고 아담은 대답한다. 이 장면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다음이다.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 열매를 먹은 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 말을 하면 딴지를 거는 사람이 꼭 있다. ‘아니 그렇다고 죄를 더 지으라는 말이요?’
오해마시라, 죄를 짓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포인트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2)

우리는 예수님의 자격으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된다고 착각할 수가 없다.
은혜는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더 이상 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죄를 짓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죄를 짓지 않는 지혜에 대한 부드러운 지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다급할 때는 책망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갈 때까지 간다면, 야단 맞을 수도 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19)

야단을 맞을 정도가 되었다면, 그것은 경종(alert)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어렸을 때 보통 부모님께 야단을 맞는 경우는 특별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을 무시하고 갈 때까지 간다면 야단맞게 되어있다. 징계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계를 아무때나 받지는 않는다. 보통 부모님은 조그만 잘못해도 징계하는 부모님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피곤한 인생이다. 정말 큰 일이 났을 때만 징계를 받음을 기억하자.

죄를 짓고 나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우리는 죄에서 돌이킬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다시 개념을 올바르게 잡자. 우리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격 때문에 가능하다! 할렐루야!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연습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것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행착오 밖에 없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가듯이,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길을 가고 있는데 거지를 만났다.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저 거지를 도와줘야지”

이것은 내 목소리인가, 하나님의 음성인가?
처음에는 잘 모른다. 그럼 실험(?)을 해봐야 한다!
진리가 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해보자.

거지를 도와주라는 목소리가 들렸다면, 일단 거지를 도와줘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일을 살펴보자.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에 그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는가? 아니면 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는가?

참고로 북미에서 거지를 돕는 사역자들은 돈을 건네주지 말라고 호소한다. 그 돈으로 마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거지를 외면하는 것도 난처하다. 어떤 경우에는 정말 돈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구분하려면, 일단 해보는 것이다.

거지를 돕는 것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장소에 가려는데, 갑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거기 가지 말고 쉬는게 어때?”

고개를 갸웃거린다. 거기 가야지만 오늘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있는데? 그렇다면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꼭 메모를 해두라. 만약에 이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갔다가 무리해서 몸이 아프다고 해보자. (난 이런 경험이 실제로 있었다!) 그렇다면 그 목소리는 성령님의 음성이 맞다! 혹은 그 곳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쳐보자. 그런데 그 장소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다든지 등.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기초적인 성령님의 음성 듣기를 연습할 수가 있다.

기도에 있어서 원칙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특정 행동이나 비전에 대한 나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신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반면, 솟구치는 흥분으로 어떤 일에 대한 결심을 하여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일에 대한 마음이 작아지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런식으로 우리는 장시간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연습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음성을 들으면 바로 아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연습해보자! 완벽주의를 음성듣기에도 가져오지 말자. 틀려도 괜찮다.

그리고 이 원칙도 기억하자.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도 반드시 부합한다. 성경에 어긋나는 음성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 따라서 말씀과 정반대인 음성이 있다면, 그것은 100% 하나님의 음성이 아님을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음성듣기를 한다고 해서 당신은 더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모두 다 듣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27) 따라서 형제자매에게 나눌 때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라면서 위압감을 주는 말도 하지 말자. 그냥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라고 해도 충분할 일이다.

 

결론

우리는 이미 거룩하다. 그리고 이미 의롭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자격 때문에 가능해졌다.

거룩하고 의로운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그리고 죄를 지었다고 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권한이 뺏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는 회개도 할 수 없다. 음성을 듣지 못하는데 무엇을 깨달아 회개를 하겠는가?

따라서 올바르게 믿도록 하자. 우리는 음성을 들을 수 있음을 확신을 가지자!

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성경의 위대한 인물이 있다. 그 사람은 다윗왕이다. 다윗은 평생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외적으로 듣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 인물이었다. 여타 선지자와 예언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했지만, 다윗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favorite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의 입장과 다르다. 오히려 더 나은 입장에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사는 성도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우리를 보고 정말 부러워할 것이다! 따라서 감사하자.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