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따라 미술감상을 5년 하다 보니 서당 개가 천자문을 읊는 지경까지 온 것 같다. 왈왈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그림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 초반까지 이어오던 그림 풍이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이 있다.

그런데 인상주의는 현대미술로 가기 전에 거대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시발점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이전에는 화가가 누군가에게 스폰서를 받아 그림을 그리는 형태가 주로였다. 그래서 미술가의 표현보다는 관객의 해석이 더 중요했다.

인상주의 전에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등에서 화가의 해석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나 살롱전에서 열린 사람들의 평가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인상주의에 이르러 “빛을 이렇게 해석해보자!”라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방법을 거부한 셈이다. 그리고 관객이 어떻게 보는 것보다, 화가가 보는 시각에 더 중심을 두는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 같은 장면을 놓고 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꽤 많다. 예를 들어서 같은 성당을 놓고 아침, 점심, 저녁 빛의 색이 다름을 표현하는 것이다.

↑ 모네가 그린 르우엔의 성당. 왼쪽이 아침에 그린 것이고 오른쪽이 정오(noon)에 그린 것이다. 빛의 색에 따라 그림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갑자기 뜬금포로 “돈 없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릴래!” 하고 마이웨이를 가는 화가가 등장한다. 이름하여 빈센트 반고흐.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평생 그림 한 점밖에 팔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를 가르쳤던 수많은 사람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고흐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왜 그런가? 아까도 말했듯이 이전 그림은 스폰서나 대중의 눈치를 보는 그런 그림이었다. 반고흐는 마이웨이를 고집하면서 자기 식대로 그렸고, 그의 그림은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이후의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과거 미술은 관객이 그림을 해석했으나 현대미술은 화가가 그림을 해석한다. 이것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사람이 반고흐다.

반고흐에게 영향을 받아 많은 화가가 이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미술을 해석할 수 있을까?’

인상주의 이후 전혀 다른 스타일의 미술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일단 반고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국의 Samuel Peploe부터 시작해서, 캐나다의 유명한 화가 Emily Carr까지 후기인상주의 그림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또한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으나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한 앙리 루소도 있다. 이들은 그림의 정확성보다는 화가의 느낌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야수파(Fauvism)가 등장한다. 야수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색깔과 모양을 이렇게 보고 해석하니 관객 너가 따라와, 알겠지?” 이런 개념이다. 이제 관객과 화가의 위치가 바뀌었다!

야수파의 대가는 앙리 마티스다. 그는 불필요한 디테일을 없애고 간결하게 만드는 것을 너무 잘하는 천재로 알려졌고, 그가 생각하기에 꼭 필요한 것만 표현한다. 그래서 마티스의 그림을 보면 덜 끝낸 것 같은 그림이 많다. 하지만 덜 끝낸 것이 아니라, 마티스 본인이 생각하기에 “여기까지 표현하면 됐군.”의 결과물일 뿐이다.

불필요한 디테일을 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만 딱 표현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고난도 기술이다. 디테일을 더하기는 쉬우나, 빼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간결화하는 것은 대상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빼도 본질이 변하지 않는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마티스는 천재였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여기저기 그림에 침투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관객보다 화가의 생각이 더 중요한 것이다.

↑ 앙리 마티스가 그린 1913년의 모로코의 카페. 마티스는 간략화를 정말 잘하는 천재였다.

마티스의 사과 일화는 유명하다. 파란 사과를 그렸더니, 그것을 지적하는 관객을 두고 마티스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자네는 내가 보는 파란색을 못보다니 참 안타깝군.”

그런데 천재라고 불리는 마티스보다 더 천재인 화가가 나타났다. 피카소였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할까? 마티스는 자신보다 12살 어린 피카소의 재능을 알아보고 열심히 격려해주었고, 당시 유명세를 타고 있던 마티스 덕분에 피카소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그런데 피카소는 너무 뛰어났다. 그가 15살 때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이 그림을 보는 많은 미술가는 좌절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을 15살 때 일구어냈으니까. 이 밑의 그림은 피카소가 15살 때 그린 그림이다!

↑피카소가 15살 때 그린 그림. 정말 ㅎㄷㄷ 하다.

화가는 자신의 화풍을 설립하는 데 평생을 걸려서 작업을 한다. 그런데 피카소는 화풍을 몇 번이나 바꾼다! 이 사람은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인상주의 그림도 완벽히 소화해서 그릴 수가 있었고, 후기인상주의 그림도 그려본다. 그런데 그려보니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그래서 이번엔 앙리 마티스 따라 그의 야수파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런데 이것도 피카소의 마음에 안 들었다. 그가 보기에 색이 너무 강렬해서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고민하다가, 그냥 한 세계를 창조하기로 한다! 미친 천재다!
1907년, 큐비즘(입체주의)이 세상에 드러났다. 피카소는 평면에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고민하고 그 법칙을 설립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은 당시 후기인상주의 그림을 그리던 조지 브라크 화가에게 설득한다. 같이 큐비즘을 그리자고. 브라크는 큐비즘에 매료되어 피카소와 함께 열심히 논의한다. 그리고 브라크도 1908년에 그의 큐비즘 작품을 내놓는다.

그런데 브라크는 천재는 아니어서 그런지, 그가 그린 큐비즘 그림은 시간이 지나도 딱히 큰 발전이 없다. 그런데 피카소는 반대로 큐비즘을 발전시키고 계속 발전시킨다. 그가 초반에 그린 큐비즘과, 중반에 그린 <게르니카>(1937년), 그리고 중후반에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1951년), 말년에 그린 큐비즘 그림을 살펴보면 전부 다양한 시도와 함께 발전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게다가 피카소는 그가 구축한 큐비즘 세계를 실제 도자기에다가 구현한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피카소가 시도한 초기 큐비즘 그림이다. (1907년)

 

↑스페인의 게르니카 도시를 나치가 폭격한 참상을 그린 <게르니카> (1937년)

 

↑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1951년)

 

여기서 우리는 천재의 세계관에 대해서 엿볼 수 있다.

천재는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 세계관은 구축함은 물론, 그 세계관이 바깥에 있는 일반적인 세계관과 완벽하게 호환이 되도록 만든다. 따라서 천재가 만든 세계관을 일반적 세계관에 살던 사람이 보고 따라 할 수가 있다. 그 예가 피카소의 큐비즘이다. 그가 만든 세계관을 많은 화가가 법칙을 배워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세계관과 호환이 안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자폐증인 것이다. 법칙이 서로 통용되지도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폐증과 천재를 혼동하는데, 둘은 엄연히 틀리다. 천재는 자신의 세계관을 일반인에게도 설파할 수 있는 사람이고, 보편적인 세계와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 일반적 보편적인 세계관과 창조한 세계관의 법칙이 통하도록 성립하면 천재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못하면 그냥 자폐증이다.

 

이 점은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통용된다. 자신만의 법칙과 세계관을 만들어서 보편적인 세계관과 연결을 하는 천재는 분야마다 있다. 세계관을 창조해내는 사람을 주목해보시라.

여기에 앞으로 미술이 나갈 미래의 방향이 있다. 요즘은 3D 프린터와 재료 단가가 저렴해져서 설치미술이 대세다. 하지만 딱히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이 나오고 있지 않다. 지금의 미술을 후대가 평가할 일이지만, 어느 누군가가 세계관 창조를 하고 보편적인 일반적인 세계관과 연결을 하는 작업만 할 수 있다면 큐비즘과 같은 새로운 장르는 얼마든지 창조가 가능하다.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다..

이상 서당개가 짖는 미술사였다. 모든 정보출처는 내 뇌 + 위키아트 + 위키피디아다 ㅋㅋ

-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