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상(ideal)을 좇는 것이 현실도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체험하고 있다. 그게 어떤 종류이든, 내가 쫓는 이상을 현실적으로 행동으로 옮기거나 부딪혀보지 않고 말로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현실도피다.

이상은 한 사람에게 명분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명분은 현실로 부딪히지 않으면 말 그대로 이상으로 끝난다. 이상은 마치 방종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자유도 틀이 없으면 방종이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행동과 시도가 없으면 이상은 그저 현실도피가 될 뿐이다.

이상은 내가 사람들로부터 자격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하이패스 같은 것이다. 이상을 좇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로 행동은 아무것도 안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쉽게 인정을 받는다. 아무런 행동이 없어도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학문에서도 이상주의자가 많다. 현실에 접촉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에만 몰두하는 위험성.
BAM에서도 이상주의가가 많다. 제자화라는 증거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로만 떠드는 위험성.
신앙에서도 이상주의자가 많다. 성경읽기와 기도,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쌓지도 않으면서 외치기만 하는 위험성.

모든 분야에 이상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상은 단 하나다. 그것은 실제로 지금도 현존하고 계신 영원하신 예수님이다. 그 외에는 전부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말로만 하는 이상주의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착각할 것이다. 난 이상을 좇고 있노라고. 실상은 이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항상 고려하자. 지금 행동할 수 있는 것을 행동하고, 이것이 내 실생활에 예수님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항상 생각하자. 고차원적인 현실도피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나니 소름이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