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동안 BAM에 대해서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내 생각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늘은 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돈을 잘 벌어서 BAM을 한다?

처음에는 BAM이 돈을 잘 벌어 경제창출을 통한 구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축복, 요셉의 축복 등 성경에서 믿음의 인물들이 부의 축복을 받은 것을 집중했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것이 저주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물질의 복을 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반만 맞는 생각이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의 축복은 저주가 아닌 것은 맞으나, 부의 축복을 내가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나의 “선한 영향력” 아래에 두겠다는 것은 옳은 동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것은 내가 높은 자리에 있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묘한 교만이었다.

예수님께 배운 첫 번째 레슨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먹고 살 능력, 즉 부를 창출할 능력은 모든 기독교인에게 예수님의 은혜로 주어졌으나, 부자가 되는 것, 사회적인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상황과 상관이 없이 복음을 살아가고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부는 유혹적이며, 부가 내 것이 아니라는 초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돈을 사랑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의 뿌리가 되지만, 나만큼은 돈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교만임을 배웠다.

처음부터 내 것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역을 하는 것이 제자화다?

효율을 따지기 원하는 것이 죄성에 근거함을 배웠다. 인간이 생각하는 효율은 한계가 많은 지성에서 나온 결론이다. 많이 준비해야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 효율을 높여야지만 최상이라는 생각 등은 인간의 논리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칠병이어의 기적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먹이셨다.

현대 교회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개인적인 관계를 배제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사역을 하거나 공동체적으로 접근해야지만 제대로 사역했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교회라는 단체에만 이익을 안겨줄뿐, 개개인 성도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히려 해악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미 사회에서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마당에, 교회까지 공동체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동체에 몸 담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과, 공동체적으로 사역을 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은 제자화라고 명확히 알려주셨다. (마태복음 28장)

그러나 사역을 하는 것이 제자화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자주 일어난다. 다음 예를 보자:
– 찬양팀/미디어팀/중보기도팀/성가대 등을 열심히 하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 교회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 일, 설거지나 청소나 섬기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 새벽기도/금요기도 등 열심히 예배와 성경공부에 나가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 단기선교를 나가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 집회를 개최하고 참석하는 것이 제자화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만 보면 칭찬받아야 마땅한 성실한 성도의 자세이나, 이것은 제자화가 아니다. 잘 섬기다가도 교회라는 공동체적 환경을 제거해버리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는 지인들 중에 리더로 열심히 섬기다가 새로 이사한 도시에서 교회와 선교단체에 적응 못하고 아예 교회 자체를 안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제자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우치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사역과 교회 일을 열심히 했을 뿐, 제자화를 한 것이 아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뛰어난 행동을 하는 것도 제자화가 아니다. 제자화는 단순히 세상인들에게 칭송 받는 것이 아니다.

일이 많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 배웠다. 중요한 것은 사역이 아닌,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제자화다.

제자화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재생산을 실제로 해야 제자화다.

 

제자화는 자연스럽지 않다

많은 목회자분들이 교회에 프로그램을 잘 디자인 해서 제자화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성공한 경우는 못 보았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는 효율을 따짐으로서 나온 결과인데, 자연스럽게 낙수효과 같이 복음이 흘러가리라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은 가르침이다.

특히 최근에는 몇 BAM 기관에서 선교적인 삶을 강조한 나머지, 자신이 선교적인 삶을 산다면 복음을 전파하지 않아도 남들에게도 자동적으로 복음이 전해진다는 잘못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는 어느 순간 복음을 설파(preach)하고 회개를 이야기 하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부딪힌다. 이런 훈련을 해보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복음 전파에 집중한다면, 그것은 “선교적 삶”이라는 핑계하에 숨는 것일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선교적 삶은, 복음 설파도 하고 삶에서 복음이 뒷받침 되는 그런 삶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언제 삶으로 보여주기만 하셨는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예수님은 군중 앞에서 설파도 하시고, 개인적으로도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통해 설파하는 것을 뒷받침 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BAM에 있어서 선교적 삶을 살자고만 외쳐서도 안 된다. 제자화에 집중한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자연스럽게 침투하지 않는다. 강압적으로 힘차게 침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악을 활동적으로 소멸시키고 계신다.

선교가 의도가 확실히 들어가듯이, BAM도 마찬가지로 의도가 확실해야 한다. 따라서 BAM을 프로그램화 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제자를 삼도록 성도들에게 직접 손수 보여주어야 한다. 직접 본인 스스로의 개인 제자화 사례를 보여주면,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사역자로 살라고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 제자를 삼으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생긴대로 인정하자

마지막으로, 계속 성령님과 예수님을 통해 확인을 받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생긴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변화되고 계몽시켜서 향상 되는 것만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는 어차피 구원받을 처음부터 자격이 없던 사람들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오로지 예수님의 자격으로만 살아가는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걸까?

솔로몬이 쓴 전도서를 읽으면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성 능력이 매우 뛰어난 솔로몬의 고민이자 토로였다. 인지능력이 누구보다도 매우 뛰어나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좋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오히려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 매 순간마다 무엇이 틀렸고 옳은지를 실시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능력을 개선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라고 성경에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달란트의 비유로 각자 주어진 능력대로 두 배라는 어마어마한 이윤을 낼 수 있는지 물으신다. 1 달란트, 5 달란트, 10 달란트 가진 이들은 공통적인 과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두 배 이윤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1 달란트 가진자가 5 달란트 가진 자의 이윤을 내라고 말씀을 하지도 않으셨다. 주께서는 1 달란트 가진 자가 1 달란트의 두 배를 성실하게 열매 맺었는지를 살펴보실 뿐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도 그렇고 다른 자매와 형제도 생긴대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그런데 요즘 BAM 기관을 보면 자꾸만 계몽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분명히 이에 따른 여러가지 부작용을 겪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자매와 형제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통해,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더 깊게 배운다. 다른 이들이 나처럼 제자화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창의적이고 뛰어나신 예수님의 능력하에 모든 이들이 개인맞춤으로 신앙을 할 수 있는다고 믿는다.

생긴대로 살아가고, 생긴대로 다른 이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겸손이다. 오히려 다른 이들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교만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복음에 있어 변화는 예수님을 만나면 생기는 과정이자 열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변화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 우리의 역할은 다른 이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힘이 없는 기독교인에게는 강력하게 예수님을 상기시켜 주는 안내자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변화를 직접 집도하신다.

 

맺으면서

10년을 채우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많은 것을 배웠다. 10년 채우기 전까지는 많은 것을 말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 제자에게는 여러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이 BAM이 아니다.
사역을 하는 것이 BAM이 아니다.
BAM을 하려면 제자화에 집중하고, 재생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삶을 통해 제자화를 뒷받침 해야 한다.
침노하는 제자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복음이 흘러간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Business As Mission, 그 앞길을 먼저 걸어가신 예수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