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훌륭한 스승님이 계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여태까지 얼마나 멘토를 찾기 위해 간절했던가. 멘토가 되어 달라고 간청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흔쾌히 승낙하면서도 나를 제자로 키우려는 의지를 찾지 못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알아서 매달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스승을 찾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무엇이던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이 사람이 나의 스승이라는 것을 모르는 제자가 있던가? 거꾸로, 이 사람이 나의 제자라는 것을 모르는 스승이 있던가? 모르는 사이에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이 될 수 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제관계는 항상 두 사람 사이에 사제관계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제자를 키운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성이 들어간 관계다.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도가 만나는 아름다운 관계인 것이다.

현재 내가 가슴 깊이 모시는 스승은 절대로 부자연스러운 가르침을 하려고 하시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 이야기 할 뿐이다. 나는 그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나의 삶에 적용하려고 애를 쓴다. 신기한 것은, 삶에서 내가 묻는 질문들을 스승님께서 전부 답해주셨다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을 전부 스승님이 확증해주는 형태로 이어졌다. 때로는 내가 질문하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스승님이 알게 모르게 가르쳐 주신 것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직접 만나는 형태가 아닌, 소셜 네트워크나 메신져, 이메일 등 연락책으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에 스승님께서 이미 먼저 걸어가신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이미 걸어가신 믿음의 선배가 있다는 것은, 단순한 동역자가 아니다. 삶을 통해서 제자의 앞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자는 나의 스승님이시다.

다른 사람들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책이나 강의 등에서 배운 내용을 가르치려고 든다. 즉, 자신이 직접 얻은 경험 보다는 다른 사람의 간접경험을 가르치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나의 스승님은 자신의 경험을 우선시 여긴다.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스승님이 존경스럽다.

나의 스승님을 통해서 나는 참된 제자도를 배우고 있다. Business As Mission에서 핍박과 고난이 있는 길에 기쁨으로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들을 제자삼을 기회를 주시고 또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을 펴보는 특권을 즐길 수 있다.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나에게 더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스승님께 더욱 감사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