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As Mission 관점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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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자신의 판단의 기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행동으로 판단하지만, 자신들을 판단할 때는 의도로 판단한다. (People judge others based on their actions, but judge themselves based on own intentions.) 특히 기독교인 커뮤니티에서 이 성향이 짙게 드리운 것을 본다. 다른 이들에게 향해서는 그들의 행동으로 판단을 하지만, 거꾸로 자신에 대해서는 "내 의도는 이랬는데..." 하면서 정당화를 하는 모습이 많다. 반대로 해야 한다. 다른

스승과 제자

내게는 훌륭한 스승님이 계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여태까지 얼마나 멘토를 찾기 위해 간절했던가. 멘토가 되어 달라고 간청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흔쾌히 승낙하면서도 나를 제자로 키우려는 의지를 찾지 못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알아서 매달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스승을 찾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무엇이던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이 사람이

전통적인 선교에 도전을 주는 현상

국력의 차이를 이용해서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개념을 버리고, 북미나 유럽이 아닌 동남아시아에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예전 세대와 다르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하며 소위 "디지털 노마드" (digital nomad ━ 디지털 유목민)라고 자신들을 부른다. 예를 들어서 유튜브에 나오는 한 분은 상세하게 말레이시아 이민에 대한 노하우를 유튜브에 올려

내 것을 부정해야 한다

세속적인 표현 중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 웃픈 문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뼈아픈 돌직구를 날리는 문구로 자주 쓰인다. 애초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 없는 기독교인이지만, 이 문구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살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으로 따지면 예수님께서 따끔하게 판단에 대해 경고하신 것을 예를 들 수 있겠다. 왜 너는 형제의 눈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 BAM

구약에서의 장막(tabernacle)에 휘장(veil)이 우리와 하나님이 계신 곳 사이에 가로막고 있었다고 우리는 배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를 가렸던 그 무거운 휘장이 찢어지지 않았었는가? (마태복음 27:50-51)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구약의 모든 장막에 지성소를 가렸던 휘장이 있었다고 믿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만도 않다. 구약에 휘장이 없이 적나라하게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예배 드리고 찬송 드리고 했던

돈이 전하는 이야기

가끔씩 <보랏빛 소가 온다>로 유명한 Seth Godin(세스 고딘)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을 보곤 한다. 그런데 오늘 올라온 글이 재미있어서 여기에 의역해본다. 컨퍼런스 이후에 집에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해보자. (자리 앉은 후에) 승무원이 다가와서는, "죄송합니다, 이 비행기가 초과예약이 되어서요. 1시간 후에 떠나는 비행기에 타는 사람을 위해 $300을 보상금을 드리고 있습니다만, 관심 있으십니까?" 하고 물어본다. 당신은 자리에 계속

BAM에 대해 생각이 변하는 과정

몇 년동안 BAM에 대해서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내 생각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늘은 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돈을 잘 벌어서 BAM을 한다? 처음에는 BAM이 돈을 잘 벌어 경제창출을 통한 구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축복, 요셉의 축복 등 성경에서 믿음의 인물들이 부의 축복을 받은 것을 집중했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것이 저주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물질의

약속 이상의 BAM

사람들은 Business As Mission이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이야기 하겠다. 비즈니스를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약속을 잘 지켜야 BAM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필드 경험이 없는 초짜일 뿐이다. 진정한 Business As Mission은 상대방이 약속을 어길 때 위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온다.   약속 잘 지키는 것쯤이야 도덕성이 뛰어난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것이다. 모든

묵묵히 자신의 할일을 하는 실력자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한다. 독불장군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걸어가신 길이니까.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만델브로는 포부와 열정을 발휘하는 학자나 빼어난 업적을 내놓는 무명 과학자에게 감명을 받곤 했다. 칼톤 가이두섹도 그중 한 사람으로,

교육학

Pedagogy는 교육학으로, 내가 매우 관심있어 하는 분야다. 그저 해당 지식에 대해서 잘 아는 것만으로 배우는 사람에게 잘 전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나는 교육학을 계속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현상을 주변에서 계속 보게 된다.   1. 너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전하려고 한다. Central theme은 있되, 오히려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한꺼번에 좋은 약을 매기면 효과는 오히려 반감하는 것과